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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26일 일요일

[속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예언 * 하나님의 교회 * 안상홍님 *




앞으로 다가올 일을 미리 알거나 짐작하여 말하는 것. ‘예언’에 대해 사전에서는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오늘날 전 세계는 경제적, 지질학적, 환경적 요인 등 모든 면에서 불안하다. 미래를 알게 된다면 재앙을 피할 수 있고 행복이나 성공을 얻는 데 유리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미래를 점치는 데 꽤나 관심이 많다. 자신의 내일과 미래를 알고 싶어 무속인이나 역술인을 찾아가고 타로, 손금, 관상, 심지어 일간지에 실린 ‘오늘의 운세’ 따위에 명운을 걸기도 한다.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 조금이라도 미래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일 터.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예언의 확실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의 경우를 보자.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점성학에 의존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예언은 철자와 문장의 변형, 그리고 생략, 고어와 외국어를 뒤섞어 놓은 혼란스러운 표기법, 일반명사와 고유명사의 상호 변환, 무작위적인 순서를 특색으로 하는 4행시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인지 갖가지 임의적 해석들이 난무한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 대한 해석은 최근에 일어난 재앙과 유사한 내용이 담긴 4행시를 찾아낸 후 유사한 내용은 부각시키고 다른 내용은 대강 둘러대는 식이다. 어쩌면 그의 예언은 꿈보다 해몽이 좋은 건지도 모른다.



성경은 예언서다. 성경의 예언은 모호하지 않고 구체적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가 있다. 객관적인 증거로는 지나간 세계 역사를 들 수 있는데, 이러한 모든 예언의 중심에 바로 성경이 있고 그 예언을 이루시고 세계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고 움직이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고 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 우상들은 소송을 일으키라 야곱의 왕이 말하노니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 장차 당할 일을 우리에게 진술하라 또 이전 일의 어떠한 것도 고하라 우리가 연구하여 그 결국을 알리라 혹 장래사를 보이며 후래사를 진술하라 너희의 신 됨을 우리가 알리라 또 복을 내리든지 화를 내리라 우리가 함께 보고 놀라리라 (이사야 41:21~23)


역사적으로 바벨론(신바빌로니아)을 무너뜨린 나라가 메대·바사(페르시아)였다. 그 후 헬라(알렉산더제국)가 등장하여 온 세계를 다스렸으며 알렉산더의 죽음 이후에는 리시마커스, 카산드로스, 셀리우커스, 프톨레마이우스에 의해 네 나라로 분할 통치되었다. 그러한 수백 년의 역사를 이미 성경은 바벨론이 무너지기 전에 예언하였고 그 예언대로 세계의 역사가 이루어졌다.


네가 본 바 두 뿔 가진 수양은 곧 메대와 바사 왕들이요 털이 많은 수염소는 곧 헬라 왕이요 두 눈 사이에 있는 큰 뿔은 곧 그 첫째 왕이요 이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네 뿔이 났은즉 그 나라 가운데서 네 나라가 일어나되 그 권세만 못하리라 (다니엘 8:20~22)


성경은 바벨론 이후로 등장할 나라의 이름까지 정확하게 예언했을 뿐만 아니라 수 백 년 이후에 일어날 일까지도 예언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세계사를 통해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이러한 확실한 증거를 보이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며 인류 역사를 이끌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성경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지금 우리가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지 예언하고 있다.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마태복음 24:3~8)


성경은 지나간 과거의 역사와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진위를 판별할 수 없는 막연하고 모호한 예언이 아닌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예언서인 성경은 반드시 알기를 힘써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 세계를 움직이시며 예언을 이루어가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베드로후서 1:19~21)



<참고자료>
‘노스트라다무스’, 네이버캐스트

2015년 7월 12일 일요일

가을비 * 하나님의 교회 * 초막절-절기

 
 
가을비는 곡식을 잘 여물게 하고 열매를 풍성하게 하지요.
 
가을 절기  '초막절'에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성령의 단비도 그러합니다.
 
우리 영혼을 튼식하게 만들고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변화되게 하며
 
알곡열매를 풍성히 맺게 하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모든 소망들을 이루게 합니다.
 
생명수의 근원이신 하늘어머니를 깨닫고 초막절을 지키면
 
이 같이 넘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 요한복음 7장 2절,  37~39절
 
 

2015년 6월 23일 화요일

떡과 유월절 * [하나님의교회] * 어머니하나님 * 안상홍님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크고 작은 행사에 여러 가지 다양한 떡을 상에 올렸다. 명절이나 생일에도 빠지지 않는 음식 중 하나가 떡이다. 떡의 어원은 동사 ‘찌다’가 명사가 되어 찌기→떼기→떠기→떡으로 변화된 것으로, 본디는 ‘찐 것’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떡은 반죽과 만드는 방법에 따라 그 이름이 참으로 많다. 쌀가루를 찐 것은 이(餌)라 하고, 쌀을 쪄서 치는 것은 자(瓷)라 하며, 기름에 지진 것은 유병(油餠)이라 한다. 또 꿀에 반죽한 것은 당궤(餹鐀)라 하고, 가루를 반죽하여서 국에 넣고 삶는 것은 박탁(餺飥)이라 하며, 찰가루를 쪄서 둥글게 만들어 가운데에 소를 넣은 것을 혼돈(餛飩)이라 한다.

선조들은 계절마다, 절기마다 풍년, 무병장수, 액막이 등의 의미를 부여한 특색 있는 떡을 해먹으며 1년을 지냈다. 봄에는 진달래꽃 등 꽃잎을 따 곁들인 화전이나 취떡을, 여름에는 술을 넣어 발효시켜 만든 증편을, 가을에는 햅쌀로 송편을 빚어 주민들과 나눠 먹었고, 겨울에는 떡 옹심이를 넣은 팥죽과 흰 가래떡을 뽑아 떡국을 끓여 먹었다. 설날 아침에 흰 떡국을 끓여 먹는 것은 1년 동안 때묻지 않고 밝고 좋은 일만 생기기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고, 떡을 엽전 모양으로 둥글납작하게 써는 것은 부자가 되게 해달라는 소망을 담고 있다고 한다.

떡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해먹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에 접어들면서는 상류층의 별식이나 세시풍속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하나의 간식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관혼상제 의례와 각종 연회의 필수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성경에도 특별한 날에 먹는, 특별한 떡에 관한 기록이 있다. 이 떡은 누룩을 넣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의미가 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고린도전서 5:7~8)

사도 바울은 누룩 없는 떡으로 유월절을 지키자고 강조했다. 유월절 양의 실체이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자는 뜻이었다. 이천 년 전 인류를 살리시고자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희생당하신 바로 전날이 유월절이었다.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가라사대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6:17~26)

유월절에 최후의 만찬을 하기 전,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예수님의 살을 의미하는 유월절 떡을 먹음으로써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니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6:35)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한복음 6:51~54)



<참고자료>
네이버캐스트,서울 떡박물관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2&contents_id=2063

2015년 5월 31일 일요일

멜기세덱 그는 바로 안상홍님 * 하나님의 교회 * 어머니 하나님

성서에서는 어떤 인물에 대해 설명할 때 대부분 ‘누구의 자손’이며 ‘누구의 아들’로 말한다. 예를 들어 요나의 경우도 이렇다.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요나 1:1)


그런데 성경에는 누구의 아들인지 또는 누구의 자손인지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럴 때면 그 인물에는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 바로 ‘멜기세덱’이 그중 한 사람이다. 멜기세덱은 살렘의 왕이면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고대시대에는 제사장과 왕을 한 사람이 겸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그런데 멜기세덱은 살렘의 왕으로 있으면서 제사장도 겸직했다. 그는 아브라함이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오자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축복한 인물이다.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창세기 14:17~20)


멜기세덱이 특별한 이유가 여기 있다. 왕으로 제사장을 겸직한 것도 평범하지 않은 일이지만 그 시대 떡과 포도주로 제사를 드리는 경우도 없는 일이다. 과연 멜기세덱에게 숨겨진 하나님의 비밀은 무엇일까. 그 내용은 1,500여 년이 지난 신약성경 히브리서에서 나와 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히브리서 5:8~10)


멜기세덱은 바로 예수님을 나타낸다. 예수님은 우리 영혼의 왕이시다. 이와 함께 구원을 위한 대제사장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래서 다윗은 훗날 오실 예수님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을 이렇게 전했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주의 우편에 계신 주께서 그 노하시는 날에 열왕을 쳐서 파하실 것이라 (시편110:4~5)


멜기세덱이 그 옛날 아브라함에게 떡과 포도주로 축복을 준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떡과 포도주로 죄사함의 축복을 주신 것, 이 또한 멜기세덱이 예수님을 나타내는 증거가 된다.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7, 26~28)


이런 이유에서 사도 바울은 히브리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서를 통해 예수님께서 멜기세덱의 반열과 같은 대제사장이심을 설명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히브리서 5:8~10)


그렇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멜기세덱은 분명 예수님을 나타내는 인물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사도 바울은 히브리서를 통해 멜기세덱에 대해 언급하며 예수님과 연관지었다. 둘의 관계가 예언과 성취에 놓여 있음을 의심할 여지없이 증거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에 나오는 성경 구절에서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히브리서 5:11~12)


사도 바울은 멜기세덱에 관하여 할 말이 많았던 부분을 앞서 설명해 놓고 왜 바로 이어 해석하기 어렵다고 했을까. 과연 멜기세덱에 대해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은 무엇일까. 사도 바울은 7장에서 그 부분에 대해 말했다.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히브리서 7:1~3)


멜기세덱이 살렘 나라의 왕이자 하나님의 제사장임을 우리는 앞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했고 아브라함으로부터 십일조를 받았던 사실도 확인했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아는 바이다. 그런데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는 말씀은 무엇을 뜻하는가. 성경에 ‘누구의 아들’로 표기하지 않았던 이 부분, 이것에 감춰진 비밀은 과연 무엇인가.


사도 바울은 이런 이유로 멜기세덱이라는 인물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해석하기 어렵다고 했다. 멜기세덱은 예수님, 이렇게만 공식이 이뤄진다면 어려울 것이 없는 예언이지만 이렇게 해석되기에 예수님은 아비도 어미도 족보도 가지고 있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마태복음 1:1)


요셉과 마리아라는 아버지, 어머니를 둔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족보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위에서 말한 ‘아비도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12:50)


이 땅에 태어난 사람치고 아비나 어미가 없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아비도 어미도 없다는 이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믿음을 가지지 않은, 즉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라는 뜻이다. 이 예언대로라면 멜기세덱은 불신자의 가정에 태어나야 한다. 그러나 초림 예수님은 아비, 어미인 요셉과 마리아가 하나님을 믿고 있는 가정이었다.


또 족보도 없다는 것은 이스라엘 족보에 이름이 없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민족치고 이스라엘의 족보에 이름이 없을 수 없으므로 족보가 없으려면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이방인이어야 한다.



멜기세덱의 이 모든 조건에 부합되기 위해서는 재림이 필연적이다. 성경의 예언은 일점일획도 변함없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히브리서 7장의 기록된 멜기세덱의 조건을 갖추기 위해 예수님께서 두 번째 오심을 사도 바울은 9장에 이어 기록하고 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7~28)


멜기세덱의 예언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 오시는 재림 예수님 그는 바로 생명의 시작도 끝도 없는 하나님이시다.

2015년 5월 16일 토요일

재앙을 면케 하는 언약, 유월절 = 하나님의 교회 * 안상홍님* 하늘어머니&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예언대로 모든 사람을 심판하실 시기가 임박했음을 여러 징조를 통해 알려주고 계십니다.  이러한 때에 영적 파수꾼들은 자명종이나 화재경보기와 같은 역할을 하여 임박한 재앙을 알리고 이 세상을 일깨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예비하신 구원의 도피처와, 재앙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신속히 알려서 재앙 속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합니다.
  노아의 시대에 홍수로써 세상이 멸망하던 때에도 구원 얻을 백성들을 위해 방주를 허락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인류가 직면한 비상사태를 대비해 구원의 도피처를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의 방법이 무엇이며 도피처는 어디인지 성경에서 그 해답을 찾아봅시다.

시 91편 1 ~11절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 인이 네 곁에서, 만 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재앙 가운데서 보호를 받는다고 성경에 예언되었는데 지존자이신 하나님께서 세우신 구원의 도피처는 바로 시온입니다(시 87편 5절).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친히 세우신 시온에서 어떠한 방법으로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시고 천 인, 만 인이 엎드러지는 재앙이 우리에게 가까이 못하게 하시는지 살펴봅시다.

출 12장 11~13절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것을 다치고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사 33장 20~22절   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성을 보라 네 눈에 안정한 처소 된 예루살렘이 보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영영히 뽑히지 아니할 것이요 그 줄이 하나도 끊치지 아니할 것이며 여호와께서는 거기서 위엄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리니....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니라


 

시온성은 하나님의 절기 지키는 교회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온의 백성들에게 유월절이라는 절기를 통해 구원의 약속을 주시고 재앙이 넘어가게 하셨습니다.
  출애굽 당시는 물론이고 어느 시대든 하나님의 언약인 유월절을 지켰을 때 백성들은 재앙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를 통해 하나님의 살과 피를 인류에게 주시는 새 언약의 법도를 세우시며 이 새 언약을 지키는 자녀들에게 구원의 인을 쳐주셨습니다(마 26장 17~28절, 눅 22장 7~20절).  나라에서 나라에 미치고 온 땅을 공허하고 황무하게 하는 재앙이 엄습해 올지라도, 절기 지키는 시온성에서 유월절을 지켜 행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재앙이 미치지 못합니다.



2015년 5월 11일 월요일

왜 두번째 오실까 * 안상홍님 * 하나님의 교회 &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구원자다. 인류는 왜 구원자가 필요한지 또 인류에게 닥친 위기는 무엇이기에 구원자가 등장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기다리는 이 시대의 구원자는 과연 누구인지 알아보자.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한복음 10:10)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이것이다. 바로 인류에게 생명을 주기 위함이다. 지구상에서 숨 쉬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명이 있다. 굳이 예수님이 아니더라도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오셨다고 하니 예수님께서 주려고 하는 ‘생명’은 무엇이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명’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한복음 6:63)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육신의 수한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이 말씀처럼 무익한 육신의 목숨이 아닌 영원히 사는 영혼의 생명, 즉 ‘영생’을 주고 싶어 하신 것이다. 유한한 삶을 생명의 전부로 여기고 살아가는 인류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시기 위해 오셨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인류는 왜 영생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 해답은 창조의 역사가 수록된 창세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6~17)


하나님께서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아담과 하와를 그곳에 살게 하셨다. 모든 것을 다스리며 자유를 만끽하도록 하셨다. 단 하나, 바로 선악과만큼은 먹지 말라는 금령을 내렸다.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단언하셨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뱀의 꼬임으로 선악과를 먹었다. 하나님의 금령을 어긴 결과는 인류의 죽음이었다. 하지만 사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어도 다시 살 수 있는 길은 있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창세기 3:22)


그 방법은 바로 생명과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라 할지라도 생명과를 먹는다면 영생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세기 3:24)


그룹천사들과 화염검은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가 생명과에 손을 댈 수 없도록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지켰다. 결국 생명과의 길은 막혔고 인류는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 이후 지금까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다. 그러므로 죽음의 굴레에서 인류를 구원하고자 예수님께서 오신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손댈 수 없었던 그 생명과를 가지고 말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6:53)


인류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오신 예수님께서 에덴동산의 생명과라며 주신 것이 당신의 살과 피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살과 피는 에덴동산의 생명과라는 뜻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마태복음 13:34~35)


창세의 역사 속에 감추어진 것은 무엇인가. 그룹들과 화염검으로 감추어버린 것. 바로 생명과다. 그런데 이것을 ‘비유’라고 하시며 실체는 ‘예수님의 살과 피’라고 하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라면 꼭 당신의 살과 피를 먹으라고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살과 피는 어떻게 먹고 마실 수 있을까.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7, 26~28)


인자의 살과 피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이다. 바꾸어 말한다면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이 곧 영생을 얻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 된다. 그러니 유월절은 에덴동산의 생명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인류는 구원 얻기 위해 유월절을 지켜야 하며 유월절을 지키는 것만이 영생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께서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고 하신 것이다(누가복음 22:15). 이 말씀 속에는 유월절만이 영생을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인류에게 지키라고 예수님께서 전하여 주신 유월절이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폐지되고 말았다. 생명과의 진리인 유월절은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인류에게는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니 이를 회복하기 위해 재림이라는 도구가 필요한 것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7~28)


두 번째 나타나심, 즉 재림은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다. 이는 처음부터 인류를 위하신 하나님의 마음이며 단 한 번도 변치 않은 사랑이다. 그러기에 두 번째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재림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에덴동산의 생명과인 ‘유월절’을 회복해야만 한다.


‘왜 예수님께서 두 번째 오셔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이 바로 이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그토록 원했던 ‘생명과’를 우리에게 찾아주는 것. 그룹천사들과 화염검으로 막아놓았던 생명과로 가는 그 길을, 오직 하나님만이 열어주실 수 있는 그 길을, 유월절이라는 진리로 알려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 이 땅에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이다.


2015년 5월 3일 일요일

멜기세덱과 유월절 & 하나님의 교회 * 안상홍님

세상의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며, 유월절을 지키는 것은 구원과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구약성경은 장차 멜기세덱과 같은 제사장이 나타날 것을 예언하였다.

시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이 예언은 누구를 통해 성취되었을까?   신약성경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음을 증거하고 있다.

히 5:6~10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누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고난을 당하시고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까?  예수님입니다.  따라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은 예수님입니다.  그렇다면 왜 성경은 예수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제사장이시라고 말할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멜기세덱과 동일한 방식으로 축복하시는 제사장이시기 때문입니다. 

멜기세덱이 무엇으로 축복했는지 확인보도록 하겠습니다.

창 14:17~20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이 무엇으로 아브라함을 축복했습니까?  떡과 포도주입니다.  당시 양과 염소 등 짐승의 피를 흘려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로 아브라함을 축복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도 무엇으로 우리를 축복하셔야 하겠습니까?  떡과 포도주로 축복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멜기세덱과 같은 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에 떡과 포도주로 우리에게 죄 사함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마 26:17~19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가라사대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웠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마 26:26~28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예수님 당시 구약 율법을 따르는 제사장들이 짐승의 피를 흘리는 제사를 드린 것과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떡과 포도주로 축복하신 것입니다.  이는 멜기세덱이 축복한 방식과 똑같지 않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시라고 하였습니다.   멜기세덱은 그림자요,  그 실체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이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곧 멜기세덱의 실체라는 말씀은 유월절 떡과 포도주가 우리 구원에 얼마나 절대적으로 필요한 진리인지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새 언약의 유월절은 멜기세덱의 실체이신 예수님과 분리할 수 없는 진리인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로부터 죄 사함의 축복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두 유월절을 지켜야 합니다.   유월절을 지키지 않거나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멜기세덱의 실체이신 예수님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2015년 4월 25일 토요일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안상홍님 @ 하나님의 교회 @

아담은 히브리어로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아담을 만드시고 영혼을 그 속에 넣자 비로소 아담은 생명을 가진 존재로 탄생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세기 2:7)

이렇게 창조된 아담은 그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하와와 함께 에덴동산에 거했다. 후에 아담은 930세라는 나이로 죽기까지 가인과 아벨 등 많은 자녀를 낳았다고 구약성경 창세기는 전하고 있다. 이것이 아담의 일생이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는 이러한 아담을 두고 두 가지로 표현하고 있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고린도전서 15:45)

창조된 아담은 분명 한 사람인데 성경에서는 첫 사람 아담이 있고 마지막 아담이 있다고 말한다. 이 말씀 가운데 두 아담은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며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다. 첫 사람 아담은 구약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인물로, 하나님께서 흙으로 육체를 만들어 그 속에 영혼을 불어 넣어 생명을 가진 존재로 탄생시킨 아담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아담은 누구인가. 마지막 아담에 대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힌트는 ‘살려주는 영’이라는 점이다. 이로 보건대 마지막 아담은 죽어가는 인류를 살려주기 위해 오시는 구원자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담을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로마서 5:14)

아담을 오실 자에 대한 표상이라고 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오실 자’는 성경 맨 마지막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22:20)

‘오실 자’는 장차 오실 예수님 즉 재림 예수님이시다. 그러므로 로마서에서 ‘오실 자’를 표상하는 아담은 바로 재림 예수님을 의미한다. 고린도전서 15장의 마지막 아담 또한 마지막에 등장하시는 재림 예수님이시다. 그렇다면 ‘살려주는 영’으로 오시는 마지막 아담인 재림 예수님은 어떤 방법으로 인류를 살려주실까.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한복음 6:54)

마지막 아담인 재림 예수님께서 인류에게 생명을 주는 방법이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사람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신다고 하셨다. 과연 예수님의 살과 피는 어떻게 먹고 마신단 말인가.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가라사대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마태복음 26:17~19)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26~28)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의 떡을 당신의 살로, 유월절의 포도주를 당신의 피로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실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살려주는 영’인 마지막 아담이 인류에게 생명을 주는 방법이다.


마지막 아담의 예언 그대로 유월절을 가지고 오신 재림 그리스도는 바로 안상홍님이십니다.





2015년 4월 17일 금요일

두 번째 오시는 재림그리스도 안상홍님 @ 하나님의 교회 $ 하늘어머니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구원자다. 인류는 왜 구원자가 필요한지 또 인류에게 닥친 위기는 무엇이기에 구원자가 등장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기다리는 이 시대의 구원자는 과연 누구인지 알아보자.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한복음 10:10)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이것이다. 바로 인류에게 생명을 주기 위함이다. 지구상에서 숨 쉬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명이 있다. 굳이 예수님이 아니더라도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오셨다고 하니 예수님께서 주려고 하는 ‘생명’은 무엇이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명’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한복음 6:63)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육신의 수한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이 말씀처럼 무익한 육신의 목숨이 아닌 영원히 사는 영혼의 생명, 즉 ‘영생’을 주고 싶어 하신 것이다. 유한한 삶을 생명의 전부로 여기고 살아가는 인류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시기 위해 오셨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인류는 왜 영생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 해답은 창조의 역사가 수록된 창세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6~17)


하나님께서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아담과 하와를 그곳에 살게 하셨다. 모든 것을 다스리며 자유를 만끽하도록 하셨다. 단 하나, 바로 선악과만큼은 먹지 말라는 금령을 내렸다.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단언하셨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뱀의 꼬임으로 선악과를 먹었다. 하나님의 금령을 어긴 결과는 인류의 죽음이었다. 하지만 사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어도 다시 살 수 있는 길은 있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창세기 3:22)


그 방법은 바로 생명과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라 할지라도 생명과를 먹는다면 영생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세기 3:24)


그룹천사들과 화염검은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가 생명과에 손을 댈 수 없도록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지켰다. 결국 생명과의 길은 막혔고 인류는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 이후 지금까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다. 그러므로 죽음의 굴레에서 인류를 구원하고자 예수님께서 오신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손댈 수 없었던 그 생명과를 가지고 말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6:53)


인류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오신 예수님께서 에덴동산의 생명과라며 주신 것이 당신의 살과 피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살과 피는 에덴동산의 생명과라는 뜻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마태복음 13:34~35)


창세의 역사 속에 감추어진 것은 무엇인가. 그룹들과 화염검으로 감추어버린 것. 바로 생명과다. 그런데 이것을 ‘비유’라고 하시며 실체는 ‘예수님의 살과 피’라고 하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라면 꼭 당신의 살과 피를 먹으라고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살과 피는 어떻게 먹고 마실 수 있을까.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7, 26~28)


인자의 살과 피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이다. 바꾸어 말한다면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이 곧 영생을 얻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 된다. 그러니 유월절은 에덴동산의 생명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인류는 구원 얻기 위해 유월절을 지켜야 하며 유월절을 지키는 것만이 영생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께서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고 하신 것이다(누가복음 22:15). 이 말씀 속에는 유월절만이 영생을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인류에게 지키라고 예수님께서 전하여 주신 유월절이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폐지되고 말았다. 생명과의 진리인 유월절은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인류에게는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니 이를 회복하기 위해 재림이라는 도구가 필요한 것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7~28)


두 번째 나타나심, 즉 재림은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다. 이는 처음부터 인류를 위하신 하나님의 마음이며 단 한 번도 변치 않은 사랑이다. 그러기에 두 번째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재림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에덴동산의 생명과인 ‘유월절’을 회복해야만 한다.


‘왜 예수님께서 두 번째 오셔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이 바로 이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그토록 원했던 ‘생명과’를 우리에게 찾아주는 것. 그룹천사들과 화염검으로 막아놓았던 생명과로 가는 그 길을, 오직 하나님만이 열어주실 수 있는 그 길을, 유월절이라는 진리로 알려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 이 땅에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이다.

2015년 3월 27일 금요일

@하나님의 교회& 시험을 이기는 자 복이 있나니



광야 40년 역사뿐 아니라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도들에게는 수많은 시험이 존재해왔습니다.  그 시험을 어떻게 이겨내며, 이기면 어떤 축복이 있는지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약 1장 2절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시험을 견디고 이겨내게 되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해두신 축복과 영광이 우리에게 전부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시험을 당할 때에는 앞에 놓여 있는 시험에만 골몰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여 하나님의 가르침과 명령을 지켜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시험을 참는 자가 복이 있고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는 자는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될 것이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벧후2장 9~12절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날까지 지키시며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형벌하실 줄을 아시느니라.....

시험의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으려면 우리의 모든 믿음 생활이 경건함 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지만 불의한 자는 그냥 내버려 두어 형벌 아래 두십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거하고 있음을 잊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돌려야 하겠습니다.


2015년 3월 13일 금요일

안상홍님과 하늘어머니 @ 그리스도를 배척한 사람들의 결말



2천 년 전 유대인들은 성경의 예언을 깨닫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육신적인 기준으로 판단하여, 그리스도로 임하신 예수님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했다.

마 27장 25절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그들의 패역한 말대로 그들은 형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예언하셨듯이, 예루살렘은 AD 70년에 로마 군대에 의해 철저하게 멸망당했습니다.

눅 21장 20~23절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이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니라 그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과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그 전쟁으로 무려 110만 명의 유대인이 죽임을 당하고, 9만 7천 명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이뿐만이 아니다.   그 피를 자신들의 후손에게 돌리라고 외쳤던 그대로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독일 나치에 의해 유대인 600만 명이 비참하게 학살 당하기도 했습니다.



성경의 예언을 믿지 않고, 예수님의 생활, 환경, 가족, 출신지 등 육신적인 면만으로 그리스도를 판단하여 영접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결국 그들과 그들의 후손까지도 처참한 멸망을 피하지 못했습니다.